이별 · 상실 · 외로움 · 창작 사례 · 약 3분
아내의 슬리퍼를 치우자니 아내를 지우는 것 같습니다
66세 남성, 퇴직 교사, 아내 사별 1년
사정
저는 66세이고 중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다 3년 전에 퇴직했습니다. 아내는 1년 전 가을에 세상을 떠났는데, 현관에 들어서면 신발장 옆에 아내가 늘 신던 회색 슬리퍼가 아직 가지런히 놓여 있어서 불을 켜기도 전에 그쪽부터 보게 됩니다. 지난달 딸이 와서 이제 옷장이랑 신발은 정리하셔야 한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는데, 저는 그날 밤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습니다. 밥을 차려 놓고도 숟가락을 두 벌 꺼냈다가 한 벌을 도로 넣는 날이 많습니다. 퇴근길 같은 저녁 6시가 되면 현관 쪽을 자꾸 돌아보게 됩니다.
갈림길
슬리퍼를 치우면 아내가 살던 흔적이 하나 사라지는 것 같아 손이 나가지 않습니다. 그대로 두자니 매일 현관의 같은 자리에서 마음이 걸려 넘어지고, 이러다 1년이 2년이 될까 두렵습니다. 딸의 말이 맞는 줄도, 제가 붙들고 있는 줄도 압니다.
사랑하는 이를 보지 못함도 괴롭고, 싫은 이를 보게 됨도 괴롭다.
— 법구경 210-211비추어 보기 · AI 해석
그리움은 물건에 깃든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마음에 매듭으로 남습니다. 1년 동안 현관에서 슬리퍼부터 본 것은 사랑하는 이를 보지 못함이 매일 새로 괴로웠기 때문입니다. 슬리퍼를 두어도 매듭이고 치워도 매듭이니, 풀 것은 물건의 자리가 아니라 붙드는 손입니다. 오늘은 불을 켜기 전에 슬리퍼를 보는 대신, 아내가 신고 걸어 나오던 발소리를 한 번 떠올리며 현관에 서 보십시오.
가져갈 한 줄
보지 못하는 괴로움은 사랑이 남은 자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