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 상실 · 외로움 · 창작 사례 · 약 3분
17년 하던 분식집을 닫고 나니 하루가 텅 비었습니다
53세 남성, 분식집 17년 운영 후 폐업, 고등학생 딸 하나
사정
저는 53세이고 17년 동안 동네 골목에서 분식집을 했습니다. 지난달 말에 월세 계약이 끝나 가게 문을 닫았고, 간판은 이틀 전에 내렸습니다. 새벽 5시면 눈이 떠져 김밥 재료를 썰던 손이 이제는 할 일이 없어 휴대전화만 만지작거립니다. 어제는 습관처럼 가게 앞까지 걸어갔다가 빈 유리창에 비친 제 얼굴만 보고 돌아왔습니다. 교복 입고 오던 단골 학생들이 어른이 되어 인사하러 오던 일까지 17년이 통째로 없던 일이 된 것 같고, 딸에게는 괜찮다고 했지만 저녁상 앞에서는 할 말이 없습니다.
갈림길
얼른 다른 가게 자리를 알아보면 또 17년 같은 하루가 시작될까 봐 겁이 나고, 그냥 이대로 쉬자니 비어 있는 하루가 저를 점점 쓸모없는 사람으로 만들 것 같습니다. 문을 닫은 것이 실패였다고 인정하기도 싫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넘기기도 어렵습니다. 어느 쪽으로 가도 지나온 17년이 헛것이 될 것 같아 발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일어나고 사라짐을 보지 못한 채 백 년을 사느니, 그것을 보며 사는 하루가 낫다.
— 법구경 113비추어 보기 · AI 해석
사라진 것을 지워졌다고 읽는 눈은 일어났던 것까지 함께 지웁니다. 간판은 이틀 만에 내려갔지만 새벽 5시마다 썰었던 17년은 내려가지 않습니다. 가게는 일어났다 사라진 것이고, 그 사이를 산 시간은 일어난 채로 남은 것입니다. 일어나고 사라짐을 보며 사는 하루가 보지 못한 백 년보다 낫다고 했으니, 오늘은 빈 유리창에 비친 얼굴 대신 문을 열던 첫 장면 하나를 끝까지 바라보십시오.
가져갈 한 줄
사라진 것을 보는 하루가 보지 못한 백 년보다 낫다